악플 달 때는 짜릿했는데.. 고소당한 6개월간은 내가 미웠다"

종합 2019. 10. 26. 10:39

악플도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일까? 취재 중 만난 악플러(악성 댓글 작성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후회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자괴감이 든다"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악플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별생각 없이 악플을 달았지만, 고소를 당하고 보니 자괴감과 굴욕감 등 심리적 고통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연예인 설리(본명 최진리·25)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그동안 받은 악플, 즉 '온라인 학대'를 죽음의 배후로 지목하는 사람이 많다. '아무튼, 주말'은 경찰 수사관, 연예 기획사, 악플 전문 법인, 범죄심리학자 등에게 자문해 '고소당한 악플러'의 6개월을 1인칭 화자로 재구성했다.
그들을 옹호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악플과 고소, 반성문과 법정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무심코 다는 악플이 일으킬 수 있는 끔찍한 나비효과를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다.
심하게 쓰지는 않았는데

'나'는 고소당한 악플러다. 시작은 단순했다. 내가 좋아하던 연예인과 ○○가 자주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귀는 사이에 가깝다고 한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래. 내 연예인도 사람인데, 사랑도 해야지. 그래야 더 절절한 노래를 쓰고,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지라시를 봤다. 다른 사람으로 갈아탔다고? 내 연예인이 후폭풍을 견디고 있다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이 사람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역시 그렇다. 소문이 안 좋다고. 여기저기 갈아타는 사람으로 유명하다고. '좋아요'가 2000개네. 어쩐지, 처음부터 이상했다. 이 ×이 착한 우리 애를 가지고 놀았구나. 나도 한마디 거들어야겠다. 그래도 나는 지성인이니, 수위는 조절해서 써야지. 요즘 악플 때문에 고소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30개 정도 썼나? 후련하다. 내 연예인도 아마 좋아해 주겠지?

몇 주 뒤 전화를 받았는데 경찰이었다. "네이버에 댓글 다셨죠? 고소장이 접수됐어요." 얼굴이 달아올랐다. 5분 뒤에 전화해 준다고 하고 수신 번호를 검색했다. 보이스피싱은 아닌가 보네. 그 ×이 고소한다는 기사는 봤다. 나는 심하게 안 썼는데?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형사는 내가 남긴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피해자분이 합의는 원하지 않으세요. 일단 경찰서로 오세요." 나 이제 어떡하지?

2만원을 내고 유선 법률 상담을 받았다.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란다. 반성문을 자필로 써 가라고 한다. 내 댓글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었는데…? 너는 대신 내가 평생 만지지도 못할 돈을 하루에 벌잖아? 그럼 이 정도 욕은 그 비용쯤으로 생각해야지. 나한테 그만한 돈을 준다면 매일 욕해도 괜찮다고 할 텐데. 일단 그냥 가봐야겠다. 그래도 다 팩트만 쓴 거니까. 내 논리를 이야기하면 할 말 없지 않을까?

난생처음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소문 들으니 토 쏠린다. 생긴 대로 논다'고 썼는데, 소문은 어디서 들은 것이냐"고 경찰이 물었다. 말실수를 했는데 "연예인을 많이 안다는 친구에게 들었다"고 하니까 "그 친구가 누구고, 무슨 말을 했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차 싶어 죄송하다고, 잘못 말했다고 하니까 "조서에 다 남는 거니까 정확히 말해야 한다"고 면박을 줬다.
"반성문 같은 거 갖고 온 거 없어요?" 바빠서 미처 준비를 못했다고 했다.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에 따라 벌금으로 끝날 수도, 실형을 살 수도 있어요." 실형이라고? 순간 멍해졌다. 내가 감옥에 간다고? 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입이 겨우 떨어졌다. "반성문, 사과문을 소속사에 보내시고, 탄원서는 저한테 보내시면 됩니다. 악플 범죄는 가해자가 반성하고 있는지 여부가 특히 중요해요."
현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악플 고소에 관해 찾아봤다. '악플로 고통받는 연예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였다. 왜 그렇게 자기를 미워하느냐며, 뭐를 그렇게 잘못했냐며, 밤새 울어서 방송 촬영 앞두고 눈이 부었다고 매니저에게 매일 혼났다고 한다. 내 댓글로도 그 사람은 이렇게 매일 울었을까? 내가 그렇게 심하게 썼단 말인가….
내가 미워진다

반성문은 늘 쓰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쓴 댓글들을 다시 천천히 읽었다. 나는 그 사람을 "벌레 같다"며 멸시하고 "살 가치가 없다. 제발 죽었으면"이라고 모욕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 용서를 빈다고? 나 같아도 안 받아 주겠다. 그래서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다. 더 돌아가서, 내가 왜 저런 댓글을 달았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그 연예인 팬이었는데, 선생님과 사귄다는 이야기를 소문으로 들어서 홧김에 남겼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댓글을 남겼지만, 형사님에게 선생님이 많이 괴로워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글을 씁니다." 꾹꾹 눌러 썼다. "제가 쓴 글에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이 내용은 쓰다가 지웠다. 그때는 온갖 악의를 담아 썼으면서, 이제 와서 상처받지 말라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내가 싫어졌다. 너무 염치없었다. 고소를 당한 순간에 깨달았어야 했다. 아니, 경찰서에서 깨달았으면 달라졌을까. 조사를 받기 전 "피해자분이 얼마나 상처받으셨겠어요"라는 형사님 말에 속으로 '그걸로 돈 벌잖아요'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지금은 아니다. 반성문 속 나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누군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A4 용지로 반성문 6장, 탄원서 6장을 썼다. 반성문은 소속사에, 탄원서는 경찰서에 보냈다. 마지막 장을 쓸 때 순간 '이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멸을 느꼈다. 선처, 감형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반성하는 마음으로 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피 말리는 심정

반성문을 보낸 지 두세 달이 지났다. 내게는 영겁의 시간이었다. 혹시 소속사가 "선처하기로 했어요. 반성문을 보면서 진심을 느끼셨대요"라고 전화할까 봐, 24시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연예인 ○○○, 악플러 선처 결정' 같은 기사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온종일 마음이 수십 번 바뀌었다. 그분이 선처 안 해줘도 달게 받아야지. 내가 지은 죄니까.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아니,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손으로 열심히 썼잖아. 안 읽은 거 아니야? 하다가 다시, 이러면 안 돼. 너는 죄인이고 벌을 받을 거야. 그래도 이렇게 반성하고 있는데, 나 같으면 용서해줬다. 괴로웠다. 내가 쓴 댓글 "살 가치가 없다. 제발 죽었으면"이 부메랑처럼 나라는 존재를 겨누는 것 같았다.
선처는 없었다. 피고인 신분으로 법원에 출석해달라는 우편을 받았다. 결국 법원에 가게 되었구나. 나는 국가가 공인한 죄인이 되고 말았다. 가서 내가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싶었지만, 변호사는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라"는 말밖에 안 했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법정에 내가 앉아 있었다. 검사님은 "경찰 조서에 쓰인 내용이 모두 맞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판사님은 "왜 그런 댓글을 달았느냐"고 물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마디였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되뇌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정말 반성 많이 하고… 제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았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제발 징역만 피하게 해주세요…. 인터넷으로는 험한 욕을 쏟아붓던 사람이 지금은 눈 감고 훌쩍대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일주일 뒤 판결이 나왔다. 벌금 200만원. "피고인이 범죄 전력이 없는 데다, 잘못을 반성하고 있으며 이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는 게 이유였다. 감옥에 가도 할 말이 없었다. 하늘에 감사했다.
악플을 달 때는 짜릿했다. 하지만 그 한순간 때문에 6개월 동안 자기혐오, 불안감에 시달렸다.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지금도 비슷하다.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할 정도로 내가 밉다. 종종 댓글을 달았는데, 지금은 댓글 창은 보지도 않는다. 지옥 같았던 시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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