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장난감의 속내

종합 2018. 5. 5. 16:30
정영애씨(42)는 지난달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다이노코어 ‘메가파이터 티라노’ 중고제품을 어렵게 구입했다. 정씨는 “새 제품을 사주면 좋겠지만 온라인 매장에서도 5만원이 넘는 장난감을 사줄 여유가 없어 중고사이트를 매일 뒤졌다”고 말했다. 정씨는 ‘포장만 뜯은 거의 새 제품’을 3만4000원에 구매했다. 그는 “다시 잘 포장해서 어린이날 아침에 아이에게 줄 생각”이라고 했다.


지난 3일 서울의 한 대형 할인매장 장난감 코너에서 남자아이가 로봇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류인하 기자

가정의 달인 5월은 부모들에게는 ‘등골이 빠지는’ 달이다. 아이들은 그동안 벼르고 있던 장난감을 어린이날 선물로 요구하기도 한다. 자녀가 원하는 장난감을 망설임없이 사줄 수 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다수의 부모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심지어 개당 5만~10만원이 훌쩍 넘는 장난감은 누구에게나 부담이다. 모바일커머스 티몬이 지난 4월 3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가 장난감의 매출 비중은 점차 증가해 어린이날을 앞둔 올해 5만~10만원대 구입비중이 27%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10만원 이상 제품의 매출비중도 20%를 차지, 2015년 대비 5%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어린이날이나 각종 기념일을 맞아 고가의 장난감을 구입하는 부모가 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은 중저가 장난감이 시장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장난감 수입이 매년 늘고, 매스컴에서 유명해진 장난감들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체 구매단가 역시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저렴한 제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비싼 제품이라도 구입하는 것이다. 실제 대형 장난감 유통업체 및 할인매장 등에 전시된 캐릭터 로봇 완제품들은 대부분 최소 4만~5만원은 줘야 구입이 가능하다. 여러 로봇이 합체하는 형태의 장난감은 1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것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장난감의 빈부격차가 발생한다.

장난감 도서관 대여사업도 실효 없어

홀로 아이를 키우는 박모씨(43)는 어린이날을 맞아 헬로카봇 ‘아이언트’를 사주려다 망설이고 있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대학교 시간강사 및 시민단체 활동으로 얻는 수입이 전부인 박씨로서는 10만원이 훌쩍 넘는 장난감을 사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박씨는 “아이가 헬로카봇을 시즌1부터 보고 또 볼 정도로 좋아하는데 로봇 장난감을 한 번도 사주지 못했다”면서 “이번에 시즌6이 방영되면서 아이가 처음으로 ‘아이언트가 갖고 싶다’고 했는데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중고사이트도 뒤져봤지만 너무 최근에 출시된 상품이라 매물 자체가 없었다. 박씨는 “집안 사정을 알기 때문에 아이가 대놓고 고가의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지만 친구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갖고 올 때마다 옆에서 구경하거나 멀뚱멀뚱 서서 ‘한 번만 만져봐도 되냐’고 하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다”고 했다.

정부는 장난감의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00년대 들어 서울 성동구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별로 조례를 제정, ‘장난감 도서관’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12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당시 전국에 설치·운영되고 있는 장난감 도서관은 114개로 수도권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평균으로는 영유아 2만4677명당 1개 기관이 있는 셈이다. 실질적인 장난감 대여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또 다른 문제도 존재한다. 소위 고가의 장난감은 대부분이 애니매이션에 기반을 둔 캐릭터 완구다. 그러나 장난감 도서관은 이 같은 캐릭터 장난감에 대한 대여사업은 실시하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도서관이 대여가능 연령을 캐릭터 완구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0세부터 만 4~6세 미만으로 한정하고 있어 만 6세 이상의 아동들에 대한 장난감 무상보육으로는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장난감은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외국에서 들여오는 수입 캐릭터 장난감이나 소위 창의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조립 제품들의 경우 고가의 로열티를 지급하기 때문에 그 가격이 고스란히 상품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국내 캐릭터 장난감의 가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중국 또는 베트남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통해 제조한다고 해도 만만찮은 가격이다. 국산 장난감 판매율 1·2위를 다투는 터닝 메카드와 헬로카봇을 살펴보면 ‘터닝메카드 W 윙 라이온’은 온라인 가격 기준으로 24만9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터닝메카드 W 엑스는 17만9000원, 터닝메카드 W 메가 에반무비 스페셜 세트는 17만9000원 수준이다. 희귀템으로 분류되는 헬로카봇 펜타스톰 5단합체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현재 30만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헬로카봇 로드세이버 3단합체는 27만원, 헬로카봇 마이티가드는 26만8200원 선이다. 단일 로봇의 경우에도 사이즈가 크고 정교할수록 10만원 중후반대까지 거래된다. 그렇다면 고가의 장난감 가격 문제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은 무엇일까. 답은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총괄과 관계자는 “장난감 가격 남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특별히 규제한 적이 없다”면서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에 따라가는 것이므로 정상가격을 규정짓기가 어렵고,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돌려쓰기·재활용 등 방법 추구해야”

터닝메카드, 공룡메카드, 소피루비, 헬로카봇 등을 모두 성공시키며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각 단계별로 최소한의 이윤만 맞춰 타이트하게 책정한 가격”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캐릭터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애니매이션 연구부터 제작, 설계 등에 들어간 수많은 무형의 비용이 포함돼 있다는 설명이다. 초이락 관계자는 “현재 출시되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애니매이션을 먼저 선보이면서 각각의 캐릭터에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이 선행된다”면서 “결국 각 캐릭터 장난감을 팔 때 스토리도 함께 판매하는 것”이라고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하나의 시리즈당 52부작을 기본제작 포맷으로 정한다. 이때 스토리라인을 잡는 작업부터 애니매이션으로 구현하는 작업까지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한 시리즈당 70억~80억원으로 책정된다. 관계자는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 1편당 들어가는 비용이 1억5000만원 정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 이후 각 캐릭터별로 인기가 높은 것을 위주로 상품화 작업에 들어간다. 관계자는 “그림으로 그린 것과 그것을 실사로 구현하는 것은 별개의 작업”이라며 “장난감 하나를 제작하는 데도 연구비용이 들어간다”고 했다. 문제는 수십억에 달하는 애니메이션 제작비용이 자체수익을 얻어내기에 한계가 있다는 데 있다. 애니메이션 1편당 공중파 방송 송출 대가는 전체 제작비용의 최대 10% 수준에 불과하다. 그것도 본편 방송이 그 정도 수준일 뿐 재방송까지 그만큼의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케이블방송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공중파 방송이 지급하는 비용의 절반도 지급하지 않는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처음 계약할 때부터 케이블채널 측은 ‘우리가 당신들 장난감 팔 수 있도록 애니매이션을 광고해주는 효과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며 단가 후려치기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애니매이션 제작비용을 모두 회수하지 못하면서 돌아온 적자가 장난감 가격에도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김시월 교수는 “장난감 가격은 시장에 맡겨놓을 수밖에 없고, 결국은 소비자가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장난감 돌려쓰기, 재활용, 빌려쓰기 등의 방법을 통해 현명한 소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장난감을 소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기업 스스로 생각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강구하는 등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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